왜 여성은 사회주의사회에서 더 나은 섹스를 하는가: 그리고 경제적 독립에 대한 논의들
크리스틴 R. 고드시 지음, 김희연 옮김/이학사·1만8000원 얼마 전 한국인의 성생활에 관한 참혹한 연구결과가 화제가 됐다. 연세대 염유식 교수와 최준용 교수의 ‘2021년 서울 거주자의 성생활’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3명 중 1명이 지난 1년간 성관계를 갖지 않았고, 특히 여성은 절반에 가까운 43%가 섹스리스 상태로 남성(29%)에 비해 비율이 훨씬 높았다. 이유 또한 서로 달라서, 여성은 ‘흥미가 없어서’ 안 한 것이고 남성은 ‘상대가 없어서’ 못했다고 답했다. 두 연구자는 이번 조사결과가 2000년의 유사한 조사보다 악화된 점을 지적하면서 “비혼, 저출산 풍조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원인으로 꼽았지만, <왜 여성은 사회주의사회에서 더 나은 섹스를 하는가>를 집필한 크리스천 R. 고드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교수는 이에 대해 정반대의 의견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향상되고 평등한 사회일수록 구성원들이 더 자유롭고 풍요로운 성생활을 즐긴다는 여러 연구결과들이 있기 때문이다.
로자 룩셈부르크. 철학자, 경제학자, 평화주의자. 유럽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중요한 사회 이론가 중 한 명이다.
예를 들어, 로이 바우마이스터와 후안 파블로 메노사는 세계 성 설문조사 결과를 젠더 불평등에 대한 독립 척도와 비교 분석했는데, 여성과 남성이 더 평등한 국가에서는 “가벼운 섹스가 더 많고, 1인당 섹스 파트너가 더 많으며, 더 어린 나이에 첫 섹스를 경험하고, 혼전 섹스를 더 많이 용인/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두 연구자는 “이와 반대로 여성이 정치적 영향력, 의료 서비스, 돈, 교육, 직업과 같은 자원에 쉽게 접근할 수 없을 때 섹스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에 접근할 수 있는 결정적 수단이 되기 때문에, 여성은 섹스의 공급을 줄여 가격을 높게 유지하는 방식으로 상황에 대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섹스의 가격이 높아지면, 남성들의 경제적 능력에 따른 섹스 불평등이 심해진다. 앞서 언급한 국내 조사에서 중산층 남성(79%)이 하위층(67%) 남성보다 성관계를 많이 했다고 답한 것은 이런 현실의 단면으로도 읽힌다.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1963년 보스토크 6호를 타고 우주에 간 최초의 여성.
이 대목에서 여성 차별과 불평등 심화가 ‘섹스리스 코리아’의 원인이라는 고드시 교수식 해석에 강하게 반발하고픈 독자가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에 더 이상 성차별은 없으며, 오히려 남성을 역차별하는 여성 우월사회”라고 믿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최근 우리 사회를 휩쓴 ‘이준석 신드롬’이 여실히 보여줬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여성 평균 임금(222만 원)이 남성 임금(344만 원)의 64%로 성별 임금격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크고(2017년 기준),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에서 압도적인 점수 차로 9년째 꼴찌를 기록 중인 젠더 불평등 사회다. 실제로 얼마 전 발표된 <2021 UN 지속가능발전 보고서>에서 한국은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 가운데 젠더평등 분야의 이행 수준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나 파우케르. 루마니아 공산당 소속 정치인으로 외교관으로 근무한 세계 최초의 여성. 1948년 <타임>지는 그를 표지에 싣고 “살아 있는 가장 강력한 여성”이라고 소개했다.
이 책에는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섹슈얼리티의 연관성을 밝힌 여러 연구들이 소개되는데, 가장 흥미로운 것이 동독과 서독 젊은이들의 성 생활을 비교한 연구다. 1988년 쿠르트 슈타르케와 울리히 클레멘트는 “동독 여성들이 서독 여성보다 섹스를 더 즐기고 더 높은 비율로 오르가슴을 느낀다”고 발표했다. 1990년에 진행된 또 다른 연구에서는 섹스 후 행복하다고 느끼는 동독 여성의 비율이 82%에 달하는 반면, 서독 여성들은 5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왜 그럴까. 저자는 “서독 사람들이 자본주의, 전통적 젠더 역할, 즉 남성 생계부양자-여성 전업주부 모델을 받아들인 반면, 동독에서는 노동자 부족과 결부된 여성해방이라는 목표로 인해 대단히 많은 여성들이 노동인구로 동원됐다”고 말한다. 그리고 독일 문화 연구자 잉그리드 샤프 교수의 말을 인용해 “이런 차이는 동독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는 상황을 만들었으며, 동독에서 여성과의 성적인 관계를 원하는 남성은 그 관계에 접근하기 위해 돈에 의지할 수 없었다”고 설명한다. 결국 “여성의 경제적 독립은 독특하고 비 상품화된, 아마도 더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형태의 섹슈얼리티가 동독에서 번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지난 20여년간 국가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동유럽에 미친 영향을 연구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동구권의 국가사회주의 정부들이 여성의 교육과 훈련에 투자하고 공공 일자리를 확대하며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보육시설을 구축하는 등 정책적 노력을 기울인 것이 여성은 물론 남성의 내밀한 일상에 미친 여러 영향을 탐색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여성들, 예를 들면 탁월한 이론가이자 열정적인 정치인인 로자 룩셈부르크와 클라라 체트킨, 플로라 트리스탕이나 최초의 여성 외교관인 루마니아의 이나 파우케르, 최초의 여성 우주인인 러시아의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와 같이 여성의 가능성을 세계로 우주로 확장한 동구권 여성들을 두루 호명한다. 1957년 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하면서 여성들을 과학 연구에 적극 투입하자, 미국은 이듬해 ‘국가 방위 교육법’을 통과시켜 여자아이들도 과학과 수학을 공부할 수 있게 했다.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친 노동적이고 성 평등한 정책을 추진하자, 서구 자본주의 정부들은 실업급여와 건강보험 같은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 경쟁에 나섰다. 그러나 동구가 무너진 후 누구와도 겨룰 일이 없게 된 자본주의는 더 이상 인간의 얼굴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는 인류 대부분을 고통스럽게 한다. 특히 여성에게 더 해롭다. 저자는 “사회주의의 몇몇 발상을 차용한다면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면서 “이는 우리를 경제적 독립, 더 나은 노동조건, 더 나은 일과 가정의 양립으로 이끌고, 그렇다, 더 나은 섹스로도 이끌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니 만국의 여성들이여, 더 나은 섹스 라이프를 위해 단결하라, 공감하는 남성들도 동참하라! 이미경 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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