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 뱅크사이드 발전소는 런던 중심부에 전력을 공급하는 중요한 시설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며 도시 발전과 더불어 공해 문제로 이전했고, 거대한 발전소 건물은 강변에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1994년 ‘런던 밀레니엄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발전소를 갤러리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발표되고, 이듬해 국제공모를 거쳐 헤르조그와 드뫼롱이라는 스위스의 40대 건축가 팀이 당선됐다.
건축가는 건물 외관을 거의 손대지 않았다. 다만 중앙에 우뚝 솟은 높이 99m의 굴뚝에서 밤에 빛이 나오도록 조명을 설치해 런던에 우뚝 솟은 문화의 상징처럼 만들었다. 그런 건축적인 행위는 과거의 몸에 현재의 정신을 넣는다는 하나의 은유이자 상징으로 보인다. 이후 테이트모던은 미국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과 더불어 세계 미술시장의 중심이 됐고, 혹자는 현대 미술의 중심이 런던으로 이동하는 사건이었다고도 평한다.
산업혁명 이후 현대에 들어서며 빠른 속도로 시민사회가 재편되고 세계는 발전했지만, 빈부 격차는 심해지고 자연은 무분별한 개발로 망가지고 있다. 그에 대한 반성과 위기의식 속에서 산업화 시대의 유산과 부작용에 대해 고민하던 시점에 테이트모던 갤러리의 등장은 무척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이전까지는 낡은 것을 부정하고 파괴한 다음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능사였다면, 테이트모던은 이전 것을 부수거나 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새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공모전을 거쳐 설계를 맡은 스튜디오 케이웍스의 김광수 소장은 “소각장이 주는 으스스함과 거대한 설비의 매력”에 빠져 일을 하게 됐다고 한다. 이 공간의 이름은 ‘아트벙커B39’인데, 숫자 39는 소각장 한가운데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 높이 솟아있는 쓰레기 저장고의 높이를 나타낸다.
아트벙커B39는 2018년 문을 열었고, 때마침 그곳을 가보게 됐다. 예전 소각장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그 위에 살짝 지금의 시간과 태도를 얹으려 한 의도를 입구에서부터 읽을 수 있었다. 당초 사람이 출입하던 곳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 버려지는 것들이 들어가던 곳을 이용하는 기분은 꽤 특별했다. 무덤덤하게 콘크리트와 옅은 국방색으로 칠한 철판을 두른 외관 속에 기존 건물의 뼈대를 하얀 실내 마감재로 살짝 덮은 내부가 보였다.

아트벙커B39는 산업화 시대가 남겨 놓고 간 예전의 습관을 수용하고 공간화하는 방식이 테이트모던과 무척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다. 테이트모던은 과거의 기억을 영리하게 이용했다. “박쥐우산과 재봉틀이 해부대 위에서 만나다”라는 슬로건의 초현실주의 미술처럼 극적 효과를 만들어내고 현대 미술을 수용했다. 그에 비해 아트벙커B39는 공간의 실존적인 가치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양면성을 드러낸다. 현대의 어두운 그늘을 그대로 수용하며 공간 자체를 예술의 영역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다. ‘버려지던 공간’의 의미를 확장해 성찰의 장소로 만든 이곳은 재생건축의 또 다른 가치를 생각해 보게 한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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