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선배님의 난데없는 문자에 당혹하여 들여다 보니 부탁한 사업이 심사에서 탈락한 것이었다. 순간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가슴이 요동을 친다. 깊은 한숨과 함께 한자 한자 정성을 다해 죄송한 마음과 그럴 수 밖에 없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을 문자로 설명올렸다.
간부회의에서 이 이야기를 꺼냈더니 "저희도 같은 사정입니다" 하며 서글픈 웃음을 나누고 말았다. "끝까지 원칙을 지켜주신 대표님, 감사합니다" 하는 인사와 함께. 공과 사를 구분하는 일, 원칙을 지키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며 아픔을 동반하는 고통스런 일이다. 쉬우면 누구는 못하겠는가?
해마다 이맘때면 문화재단은 각종 사업 심사로 눈코뜰 새가 없다. 농사로 치면 모내기철이다. 충남 전역의 문화예술 단체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업하나라도 수행해 보겠다며, 머리를 싸매어 기획서를 작성하고 인연줄을 가동해서 부탁하고 읍소한다. 오래된 모습이고 어쩌면 당연시 여기던 모습이었다.
사실 전국의 모든 재단들은 사업심사결과 발표후에는 으레껏 홍역을 치른다. 관계된 직원들은 민원에 시달려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사업부서는 기피부서가 되곤 한다. 심지어 언어폭력에 시달린 직원들은 자동녹음장치를 설치해 달라는 하소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예술인들 탓만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직원들도 역시 불만이었고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일로 직장을 떠나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 재단은 작년부터 시스템을 완전히 바꾸어, 경향각지의 분야별 전문가들로 대규모 심사위원풀 구성, 추첨 및 입회, 심지어 심사현장 참관제도까지 만들고 추첨도 도의회에 가서 의원님들이나 전문위원들이 추첨토록 했다.
대표인 나부터 심사과정에 눈길 한 번 숨길 한 번 준 적이 없고 심사위원 명단조차도 모른다.. 다만 부탁하는 이들에게는 서류제출전 상세한 안내와 컨설팅을 해드렸을 뿐 심사는 전적으로 심사위원의 몫이었다.
덕분에 작년에는 골치아픈 민원이 단 한건도 없었다. 보직 바꾸어 달라는 읍소도 사라졌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모든 간부들의 말못할 인간적 아픔이 있다. 개혁은 제살도려내기를 전제하기에 그렇다.
요즘 'LH사태'를 보면서 연일 마음이 불편하다. 공정과 정의가 무너진 현실 앞에 국민은 분노하고 허탈하다. 불환빈환불균 (不患貧患不均)이다. 가난은 참을망정 불공정은 참지 못한다.
극심한 양극화로 국가공동체가 분열의 위기를 맞이하고 코로나로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이때 공직자들의 투기는 끓는 가마에 기름을 부은 격이랄까?
차제에 부정비리는 발본색원하고 법제도적 개혁을 속전속결로 이루어 민심을 수습하고 시대적 소명인 개혁을 진전시키기 바란다. 거기에 무슨 여야가 있고 이념이 있나? 상식과 원칙만으로 충분한 것 아니겠는가?
배는 본래 좌우로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지나치게 기울어지면 전복되는 법. 그 중심잡기가 공직윤리 확립이며 상식과 원칙을 지키는 일이다. 불환빈환불균 (不患貧患不均)을 다시 생각하는 오늘이다.
김현식 충남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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