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기 박사가 지난 8월2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자택에서 카사바 품종 개량으로 나이지리아 식량난 해결에 도움을 줘 추장에 추대됐던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추장의 지팡이’를 짚은 그의 뒤로, 역시 추장을 상징하는 부채가 보인다. 부채에 적힌 ‘세리키 아그베’라는 문자는 ‘농민의 왕’이란 뜻이다. 수원/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 추장이 된 식물학자가 있습니다. 1970년대 나이지리아 식량난 해결에 도움을 준 공로로 이키레 마을 추장이 된 한상기 박사. ‘명예직’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산천초목을 다스리기에 땅을 사고팔 때도 추장의 허가가 필요한 ‘이키레 법’을 따라 실제 추장으로 주민들과 함께했습니다. 23년간 체험한 아프리카 작물과 땅의 힘, 그것을 고스란히 반영한 아프리카식 대화법을 들어봤습니다. 나이지리아의 한국인 추장, 한상기(87) 박사. 식물 유전·육종학자인 그는 세계적인 종자(씨앗), 식량 전문가다. 서울대 농과대학 교수로 일하던 1971년 극심한 식량난에 처한 나이지리아로 떠나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성이 높은 카사바 품종을 개량해, 그 공로를 인정받아 ‘농민의 왕’이라는 칭호로 이키레 부족 추장이 되었다. 열대성 식물인 카사바는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지역에서 주로 재배되는 세계 8대 작물 중 하나로, 25개 나라 8억명이 주요 식량으로 삼는다.
고구마처럼 덩이뿌리를 섭취하는데, 잎도 채소로 활용한다. 한 박사가 개량한 카사바는 오늘날까지 나이지리아에서 500만㏊에 걸쳐 재배되고 있다. 나이지리아에 한국에서 온 이 식물학자는 식량난 해결을 위해 잠깐 들른 ‘지나가는 존재’가 아니었다. 한 박사는 아프리카 땅에 뿌리 내린 주민으로 살았다. ‘길은 나그네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케냐 키쿠유족 격언) 그는 나그네가 아니었고, 길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50여년간 연구한 세계 농업과 작물의 전파 경로 및 특성을 정리한 책 <작물의 고향>(에피스테메)을 최근 펴낸 한 박사를 지난 8월24일 경기도 수원시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1983년 이키레 마을 추장 대관식 날, 한상기 박사(가운데)와 부인 김정자씨(왼쪽)가 이키레 ‘왕’ 오바(오른쪽)와 나란히 앉아 있다. 한상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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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말 ‘다양성에서 멀어지지 마라’ ―교수에서 추장이 된 독특한 삶을 사셨어요. 38살에 서울대 교수직을 놓고 아프리카의 연구원이 되셨지요. “나이지리아 소재 국제열대농학연구소(IITA)에서 소장보로 은퇴할 때까지 23년 동안 일했습니다. 후회 없는 선택이었어요. 아프리카행은 사실, 연구를 마음껏 하고 싶어서 찾은 돌파구였어요. 1970년대 초, 당시 한국에선 농학 연구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연구소 쪽 제안을 받고, 일단 한번 가봤더니 시설이 굉장하더군요. 포드, 록펠러 재단의 자금으로 운영되고 직원은 무려 1500명 규모였어요. 원없이 연구할 수 있겠다 싶었지요.”
―박사님에게 주어진 과제가 식량난 해결이었는데요. 이런 목표가 부담스럽진 않으셨어요? “당시 저는 카사바라는 작물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었습니다. 막막했지요. 그래도 육종학자로서 지금 당장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배이자 스승들이 그랬듯이요.” 한상기는 서울대에서 ‘수원지방 잡초’ 연구로 석사 학위(1959)를 받고,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보리의 딱정벌레에 대한 저항성’ 연구로 박사 학위(1967)를 받았다. 그는 한국에서 잡초학을 연구한 최초의 농학자다. “농업은 잡초와의 전쟁”이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잡초학은 “농업으로 끼워주지 않았다”. 그만큼 농업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부족했던 때다. 잡초학을 권한 사람은 지영린(1900~1973) 교수다. 지영린은 한국 재래농법의 과학성을 토대로 작물학을 정립한 대표적인 농학자다. 일제에 항거하는 학생운동과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섰던 그는 일제가 세운 수원고등농림학교(서울대 농과대 전신)의 유일한 한국인 교수이기도 했다.
앞줄에 있는 카사바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병에 걸려 거의 죽어가고 있는 카사바다. 뒤에 보이는 카사바는 한상기 박사가 개량한 내병성 카사바 계통이다. 에피스테메 제공
한상기 박사가 개량한 내병다수성 카사바는 현재까지 내병성을 유지해 나이지리아에서 약 500만㏊에 걸쳐 재배되고 있다. 에피스테메 제공
―카사바 문제, 어떻게 푸셨어요?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그때 어떤 행동을 하셨는지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가 동시에 카사바를 덮쳤더군요. 가장 먼저, 나이지리아 지역을 돌면서 재래종 카사바 종자를 최대한 수집했어요. 그다음, 카사바 원산지인 브라질로 직접 갔지요. 좋은 카사바 종자(근연 야생종)를 받아서 돌아왔어요.”
―흩어져 있는 씨앗들을 모으고 또 모으는 이유는요? “병에 대한 저항성 유전자원을 찾기 위해서죠.”
―저항성 유전자원이라면, 일종의 ‘백신’인가요? “그렇습니다. 농약 없이 병을 극복하려면 그 병에 강한 형질, 즉 저항성 유전자원을 찾아야 해요. 이 과정이 지난합니다. 어느 종자에 저항성 유전자원이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 그러므로 핵심은 다양성입니다.”
―종자가 다양해야 그중에서 저항성을 찾을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지요? “네, 종자 종류가 적으면 어떻게 될까요? 저항성 유전자원을 끝내 못 찾으면, 거기서 멈출 수밖에 없어요. 찾을 때까지 후보가 많을수록 유리한 거지요. 식량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코 다양성에서 멀어지면 안 됩니다.”
―카사바 저항성 유전자원을 찾기까지 과정은 어땠나요? “일단 브라질에서 가져온 종자를 발아시켜 계통을 만들었어요. 이때, 행운이 따랐지요. 나이지리아 이바단 농업시험장에서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에 저항성이 있는 한 카사바 계통을 발견했어요. 오래전에 영국 연구진이 나이지리아 카사바 재래종과 브라질 카사바 야생종을 교잡해서 얻은 계통을 보존해둔 것이었죠. 이것을 브라질에서 얻어 온 카사바와 교배해 수천개의 계통을 다시 만들었어요. 쫙 펼쳐놓고, 이 가운데 병에 강하고 수량이 많은 계통을 선발해 ‘새로운 카사바’를 만들어냈지요.”
카사바 종간 교잡(교배). 위 왼쪽이 재래종 카사바 열매와 종자이고, 위 오른쪽이 근연종 카사바의 열매와 종자다. 아래는 이들 간 교잡된 열매와 종자. 전통적인 교잡 육종으로 탄생한 생명체는 유전자변형농산물(GMO)과 다르다. 지엠오 기술은 자연적으로 교잡이 일어날 수 없는 이종(박테리아 등)을 인위적으로 결합한다. 에피스테메 제공
병에 강하고 수확성이 높은 카사바 품종을 개량한 공로로 1983년 이키레 부족 추장으로 추대됐다. 당시 나이지리아 국영 신문인 <데일리 타임스>가 ‘추장 한상기’를 보도했다. 수원/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1976년, 카사바 내병성 품종 육종 연구를 시작한 지 5년 만에 ‘내병다수성 카사바’가 나왔다. 하지만 농민들에게 보급되어 재배되지 않으면 허사였다. 그는 자동차에 카사바를 싣고 다니면서 병든 카사바가 보이는 대로 그 땅에 ‘새 카사바’를 주삿바늘처럼 “꽂았다”. (카사바는 종자가 아니라 줄기 형태로 심는다.) 그렇게 한상기의 내병다수성 카사바는 나이지리아 전역에 퍼져나갔고, 5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내병성을 유지하고 있다. 작물 육종에서 매우 드문 경우다. 이 성과로 1983년 이키레 부족이 추장으로 삼은 그는 현재 영국 생물학회와 미국 작물학회 펠로(석학회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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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가르침 ‘땅에 빚지지 마라’ ―책에서 ‘작물 유전자원 사태’를 우려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기서 사태(沙汰)는 산사태처럼 무너져 내리는 현상인데요. “육종이란 종자의 변이, 즉 다양성을 이용한 순화(길들이기) 개량 기술입니다. 야생 기본종은 변이가 매우 커요. 그런데 오늘날 다양한 유전자원을 품은 종자들이 빠르게 유실되고 있어요. 유전자원 사태로 작물의 다양성 수준이 낮아지면 병충해가 더 자주, 크게 일어날 수 있어요.”
―종자도 ‘멸종’되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맞습니다. 한번 없어지면 영영 사라지고 말아요. 우리의 중요 작물인 벼, 보리, 콩, 밀 등 유전자원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어요.
한국 농가에서 재래종 고추, 목화, 호밀은 잔존율이 0%죠. 개구리참외도 자취를 감췄어요. 전세계적으로 유전자원 사태는 공통적인 현상입니다.”
―원인이 뭐라고 보시나요?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종자들이 얼마나 귀한지 모르기 때문 아닐까요. 그러니 찾는 사람도, 재배하거나 보존하는 사람도 줄었겠지요. 변이를 통해 새 품종이 나온다 해도, 새 품종만 선호해서 자연의 변이(다양성)를 감소시키면 안 됩니다. 이를 적절히 표현하는 아프리카 스와힐리어 격언이 있어요. ‘땅에 빚지지 마라. 훗날 엄청난 이자를 요구할 것이다.’”
―땅에 빚진 대가는 크다는 경고군요. “작물이 생존해야 인간도 생존해요. 인류와 작물은 공진화(서로 영향을 주면서 진화하는 일) 관계입니다.”
내병다수성 카사바 품종의 수확물. 고구마처럼 덩이뿌리를 캐내 식량으로 활용한다. 뿌리에 청산이 들어 있어 반드시 독성을 제거하고 섭취해야 한다. 에피스테메 제공
내병다수성 카사바를 기르고 있는 나이지리아 농민들. 에피스테메 제공
―유전자원 사태의 원인 가운데 기후변화도 있겠지요? “물론이죠. 온난화에 따라 작물이 적응하지 못해 사라지거나, 재배지가 북상하면서 원래 있던 작물이 사라질 가능성이 크죠. 무엇보다, 요즘처럼 잦은 폭우나 긴 장마는 종자가 살아갈 토양 자체를 위협해요. 흙이 씻겨 내려가면서 지력(땅의 힘, 양분)이 도망가버려요. 표토 1㎜가 쌓이는 데 100년이 걸립니다. 인구 증가도 문제죠. 개간하는 땅이 넓어지는 만큼 토양이 유실돼요. 토양이 줄어들면 숲을 이룰 수 없어서 잡초만 가득해지는 거예요.”
―자연적 변이건 인위적 순화건, 변화는 지속됩니다. 기후위기 시대의 순화는 어떠해야 할까요? “자연적 변이는 인간이 방향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인위적 순화는….” 막힘없이 대답을 이어가던 노학자가 처음으로 망설였다. 짧지 않은 침묵 끝에 신중하게 꺼낸 대답을 그대로 옮긴다. “땅에 이자를 얼마나 물어야 할지… 저는 해답을 찾기 어려워요. 너무 큰 문제여서 다 파악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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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당신에게 모든 걸 주기를
지구를 20바퀴 돌며 50여년간 식물 유전·육종학을 연구해온 한상기 박사가 겹겹이 잇대어 사용했던 여권을 들어 보이고 있다. 수원/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작물의 고향>은 인류를 먹여 살리는 작물들이 어느 땅에서 유래했는지, ‘내 밥상’에 오기까지 어떤 여정을 거쳤는지를 쉬운 언어로 정리하고 있다. 그 근거는 작물의 8대 발원지를 처음 제시한 러시아 식물 유전·육종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1887~1943)의 연구에 뿌리를 둔다. 바빌로프는 20세기 최고의 식량학자이자 ‘인류를 구한 식량학자’로 불린다. 1차 세계대전 뒤 10년간 60여 나라를 다니며 종자를 수집·보존하고 연구한 바빌로프는 56살에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스탈린이 승인한 생물학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옥에서 죽었다. 바빌로프연구소의 동료 연구원들이 미래 세대를 위해 전쟁 중에도 종자를 먹지 않고 지키다가 굶어죽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씨앗 보존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바빌로프 정신’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씨앗의 방주’인 노르웨이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가 대표적이다. 이곳에는 기후위기, 핵전쟁, 소행성 충돌 등 ‘최후의 재앙’ 이후를 대비해 씨앗 100만여개가 보존돼 있다.
이 책은 바빌로프가 제시한 작물의 8대 발원지로 중국·한국,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 지중해 연안, 에티오피아, 남멕시코·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를 소개하면서, 아홉번째 발원지로 나이지리아 등 서부 아프리카를 추가하자고 제안한다. “바빌로프가 서부 아프리카에서 발상한 수박, 참외, 수수, 기름야자(오일팜), 흰 마 등의 원산지는 밝힌 적이 없고, 그가 남긴 기록에 서부 아프리카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는 것으로 미루어 이곳을 탐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바빌로프의 1929년 한국 탐방기를 번역해 수록한 점도 흥미로워요. “제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바빌로프 박사가 ‘한국’을 명시했다는 거예요. 그때가 일제강점기인데, 이분이 한국이란 단어를 쓴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한국이 일본에 강제 점령됐다고 기록했지요. ‘강도 높은 일본화에도 고유의 언어와 전통을 지키고 있다, 진정 신기하다’고요. 바빌로프는 동아시아 종자 탐험 일정을 한국에서 마무리해요. 일본에는 가지 않았어요. 일본은 작물자원 빈곤국이기 때문이죠.”
ㅡ바빌로프는 한국의 주식 작물로 벼와 콩, 과수로는 대추와 감을 꼽았어요. 홍시를 젤리로 표현하기도 하고요. 특히 콩에 대한 서술이 길던데요. “우리 민족과 콩은 오랜 세월 건강하게 공존해왔기 때문이에요. 자랑스럽게도, 콩을 작물로 개량해서 세계에 전한 원산지가 여기예요.”
―박사님의 식탁이 궁금합니다. 어떤 작물을 선호하시나요? “골고루 먹되 제철 채소 위주로 소박하게 먹습니다.”
나이지리아 주민들과 춤추고 북 치는 한상기 박사. 한상기 제공
―수억년 동안 반복된 재난과 기후변화에도 식물은 살아남았습니다. 가장 강인한 식물을 꼽으신다면요? “모든 작물은 강한 힘을 갖고 있어요. 새로운 병충이나 바이러스 등의 공격을 받으면, 스스로 저항성 있는 계통을 만들어내지요. 오랜 시일이 필요하지만요.”
―아… 인간이 초래한 위기의 속도가 작물의 회복 속도를 앞지르는 게 문제인 듯합니다. “식물은 느리게 ‘조용한 혁명’을 합니다.”
―녹색혁명은 원래 20세기 중반 육종을 통해 농업 생산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사건을 가리키는 말이었어요. 지금은 청정에너지가 개발됐을 때 주로 사용되는 말이지요. 미래의 녹색혁명을 이끌 세대한테 도움말을 주신다면요? “아프리카 추장들은 오래된 격언으로 대화해요.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요. 암시적인 언어를 통해 마찰을 줄이면서 일을 슬기롭게 처리하기 위해서죠. 남아프리카 코이산 사람들은 뿌리작물의 첫 수확을 마치고 감사제를 지내요. 추장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저는 당신에게 갑니다. 당신에게 빕니다. 제발 저에게 양식을 주시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양식과 모든 것을 주십시오.’”
―달라고 하기 전에, 먼저 땅에게 간다고 기도하네요. “땅을 두려워하면서 가까이하는 아프리카인들처럼 ‘과거를 언제나 귓전에 남겨두기를’(아칸족 격언) 바랍니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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