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미의 티브이 새로고침]
<여자들의 은밀한 파티>(여은파)는 <나 혼자 산다>(문화방송)에서 파생한 예능 프로그램이다. 2018년 9월 화사 집에서 찍은 <나 혼자 산다> 에피소드에서 박나래, 한혜진, 화사가 뭉쳐 독립된 예능을 만들 수 있겠다는 가능성이 최초로 타진되었다. 2019년 11월 박나래 집에서 찍은 생일파티 에피소드에서 조지나(박나래), 사만다(한혜진), 마리아(화사)라는 희대의 캐릭터들이 만들어졌다. 2020년 7월11일에 드디어 정규 편성이 되었다. <나 혼자 산다>가 끝난 직후 첫 회를 방송했는데, ‘본방보다 재밌다’는 반응이 쏟아져나왔다. 금요 심야 방송임에도 시청률이 4%에 육박한다. ‘순한맛’으로 편집된 방송본 외에 유튜브로 공개되는 ‘매운맛’도 있는데, ‘유튜브 갬성’ 가득한 입담들이 여과 없이 쏟아져나온다. 유튜브의 구독자가 이미 50만명을 넘어섰다. <여은파>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여성 예능인의 약진이다. <선미의 비디오가게> ‘박미선 편’(에스비에스)이나 <다큐 인사이트―개그우먼>(한국방송1)이 성찰하였듯이, 그동안 여성 예능인들은 홀대받아왔다. <무한도전>(문화방송)이 승승장구하고, 유사한 프로그램들에서 남성 예능인들이 떼 지어 나오는 동안 여성 예능인들의 자리는 하나둘 사라졌다. 2015년에 박미선과 김신영이 <해피투게더>(한국방송2)에서 하차한 것이나, 방송에서 밀려난 송은이와 김숙이 팟캐스트를 시작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후 분위기는 조금씩 반전되기 시작했다. 송은이와 김숙이 팟캐스트 성공을 지렛대 삼아 방송으로 복귀했으며, 여성 예능인들이 리얼리티 예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는 여성 예능인들이 노력한 결실이겠으나, 2015년 이후 불어닥친 페미니즘 열풍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 선 인물이 박나래다. 데뷔 이래 무난한 조연을 거부하고 과한 캐릭터를 구사해온 박나래는 남성 중심적이고 가족 중심적인 예능 환경에서 비호감 캐릭터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훈풍이 불자 평가도 달라졌다. 비혼의 삶을 조명하는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나래바 사장님’ 캐릭터는 독자적인 유흥의 세계를 구축한 재미난 캐릭터로 환영받았다. 인기와 더불어 2017년부터 연거푸 ‘엠비시 연예 대상’ 후보에 올랐으며, 2019년에 마침내 대상을 거머쥐었다. 2017년 이후 젠더 토크쇼 <까칠남녀>(교육방송) <뜨거운 사이다>(온스타일), 여성 리얼리티 예능 <같이삽시다>(한국방송2) <밥블레스유>(올리브) <캠핑클럽>(제이티비시) <노는언니>(이채널) 등이 만들어졌지만, 그중에서 <여은파>가 예능 본연의 임무에 가장 충실하다. 박나래, 한혜진, 화사가 형광, 호피, 쫄쫄이 등 극강의 패션으로 무장한 채 무엇이든지 한다. 한여름에 롱패딩 화보를 찍고, 음원을 녹음하고, 홈 트레이닝을 하고, 미용 자격증 따기에 도전하고, 삼바춤을 배우고, 패션쇼를 하고, 달력을 만든다. <무한도전>에서 ‘평균 이하’를 자처하던 남성 예능인들이 별별 것에 도전했던 것처럼. ‘19금’ 토크도 거침없다. 남성들이 예능 프로그램을 독점하던 시절 유행하던 “여자들은 망가지지 않으려 해서, 여성 예능은 재미가 없다”는 말이 얼마나 헛소리인지 알 수 있다. <여은파>의 스타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나래의 ‘상한 나라의 독개구리’ ‘복고 레슬러’ ‘아가저씨’, 한혜진의 ‘복고 마네킹’, 화사의 ‘복고 외계인’ ‘씻고 나왔단 마리아’ 같은 별명은 단지 우스꽝스러운 분장에 대한 조롱이 아니다. 이들은 지극히 다인종적이고 혼종적인 패션을 구사하며, 일종의 코스프레처럼 문화적 놀이를 수행한다. 박나래는 예전에 키 큰 장도연과 극적인 대비를 이루며 파격적인 패션 개그를 선보인 적이 있었다. 그는 평상시에도 패셔니스트임을 자부하며,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아무나 소화하기 힘든 과감한 원색의 패션을 구사한다. 요란한 패션에 짧은 영어 단어를 두번씩 반복하는 화법은 미국에 이민 간 한국인을 연상시킨다. 한혜진은 20년 차 톱모델이라는 스펙이 무색할 정도로 털털한 허당미를 보여주어왔는데,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의 심혜진을 연상시키는 고딕 패션 속에서도 특유의 ‘간지’를 발산한다. 화사의 머리 장식과 큰 문양의 옷은 흑인 여성들이 입는 성장이다. 이는 마마무가 흑인 음악의 영향을 감추지 않아온 것과 맥을 같이한다.
이들은 ‘외국 화장’ 혹은 ‘교포 화장’이라고 하는 진한 색조 화장을 한다. 자연스러움이 강조되는 한국 화장과 매우 다른데, 투명함과 영롱함을 강조하는 ‘동안 메이크업’이 대세가 된 것은 2000년대부터다. 1990년대에는 뚜렷한 이목구비와 도회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브론즈나 스모키 화장법이 유행했다. 성숙함과 관능미가 강조되던 90년대 ‘센 언니’ 시대에서 청순함과 귀여움이 강조되는 2000년대 ‘소녀들’의 시대로 이행한 셈이다. 한편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탈코르셋’ 논의가 급부상하면서, 금욕적이고 무성적인 패션이 대세로 떠올랐다. 여기서 <여은파>의 과도한 패션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꾸밈이 단지 성적 대상화에 종속되는 행위이기만 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인종과 문화를 넘나들며 스타일은 물론이고 어쩌면 젠더까지 기획해내는 다층적인 수행일 수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반가운 소식이 있다. 첫째는 여성혐오 논란으로 하차 청원이 빗발치는 ‘기안84’가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지 않고 있다. 공식 하차 발표를 기다린다. 둘째는 핑클 멤버가 출연했던 <캠핑클럽>의 후속 프로그램으로 <캠핑핫클럽>(제이티비시)이 준비 중이다. 박나래, 박소담, 솔라가 출연 예정이라 하니, <여은파> 이상으로 대박이 나길 기대한다. 대중문화평론가
문화방송 제공
September 05, 2020 at 06:56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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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은파' 극강 패션·19금 토크, 거침없는 여성 예능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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